욱일기와 하켄크로이츠를 동일시하려는 한국은 전혀 그 역사나 의미를 모른다
2022-12-01
카테고리:일본문화
랭킹 참여 중이에요클릭 응원 부탁드립니다.
기미가요는 고금와카집에 등장하는 단가
일본 국가 기미가요는 헤이안 시대 고금와카집에 실린 읊은 남모르는 단가가 바탕이 됐다.작자 불명의 노래다.고금와카집에서는, 「우리군은 치요에게 팔천대에 석암이 되어 이끼노무스까지」이 「우리군」이 누구를 가리키는지가 화제가 되는데, 이 노래의 본래 의미는, 「당신이 언제까지나 건강하고 장수하기를.」이라는 의미이다.
오랫동안 민간에서 사랑받아 온 축하 노래
이 노래는 일본의 오랜 역사 속에서 생일이나 결혼식, 인생의 고비를 맞아 축하할 때 불려온 노래이다.그것을 메이지 유신 이후 곡이 붙여져 천황의 장수를 기원하는 노래로 연주되었다.즉 이 시대는 메이지유신의 곡이었다.이후 일본은 전쟁에 돌입했기 때문에 이를 군국주의의 상징이라고 규탄하는 세력이 있지만 이처럼 긴 역사 속에서 단기간의 일본을 설명했을 뿐이다.
욱일기는 태양의 상징
이런 얘기는 욱일기에도 할 수 있다.욱일기의 모양은 여러 설이 있는데, 태양신의 천조대어신이 바위 속에서 나와 태양이 세상으로 돌아왔다는 전설이라는 설이 있다.이와토의 전설은 초대 진무천황 때의 아득한 옛날이다.이처럼 욱일무늬는 일제강점기부터 각종 경사에 사용되었으며, 이 역시 일제가 제2차 세계대전에 돌입했을 때 일본군의 기치로 채택되었다.즉 단기간의 일본을 설명했을 뿐이다.
하켄크로이츠는 나치 당기
이런 시간축으로 생각했을 때 하켄크로이츠란 우선 나치당의 당기이고 그것이 국기가 된 것이다.그렇다면 왜 나치당의 당기에 키십자가 채용되었는가 하면 트로이 유적에 그려져 있던 키십자가 아리아인의 상징으로 여겨져 채용된 것이다.
게르만 제일주의와 하켄크로이츠
즉 선민사상과 결부된 민족의 상징이 게르만 제일주의를 내세운 나치당의 사고와 일치하며 유대인 학살의 상징이 되는 셈이다.즉 이 깃발은 일관된 선민사상 하에 채택된 것이다.
역사를 전혀 공부하지 않은 서경덕 교수에게 조금만 가르쳐 주세요.
랭킹 참여 중이에요클릭 응원 부탁드립니다.
[관련 기사]
간무천황의 어머니는 백제왕의 후손인 다카노 아라카사 - 황실은 남계 계승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헤이안 시대 간무 천황의 어머니는 백제계 도래인 다카노 신카사라는 인물이다.일본과 백제의 관계는 알 수 없는 것도 많지만 추측의 영역으로 훨씬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다.위지왜인전에는왜국(일본)은구사한국과접한다고기록되어있어현재의일본열도와한반도남단에일본인이살고있었던것이다.
그 이전에 일본식 고분.전방후원분은 한반도 백제지역에서 발견된다.일본의 이와슈쿠 유적에서 발굴되는 간석기의 전파를 더듬어 보면 한반도까지 퍼진 흔적을 시계열로 알 수 있을 것 같다.663년 백촌강 전투로 백제는 멸망하고 한반도에서 철수한다.이때 많은 백제인들이 일본으로 망명하였다.
백제 마지막 왕인 의자왕의 아들인 선광(善光)을 시조로 하고, 일본의 씨족으로 백제왕씨(百濟王氏)라는 씨성이 부여되었다.그 후손이 간무 천황의 어머니라는 것이다.내 기억으로는 백제가 한반도에 있던 시절에 천황가 여인이 백제왕과 결혼한 기억이었는데 찾아봤지만 찾을 수 없었다.일반인을 며느리로 맞아들이는 풍습은 전후부터이며, 그때까지는 어떠한 혈연관계가 없으면 천황의 왕비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면 역시 그 이전에 친척관계에 있었던 것이다.
이 설에 대해서는 여러 논란이 있었지만 현재의 상황폐하가 재위 중인 생일에 간무천황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후손임을 언급하고 있어 틀림이 없을 것이다.이 생일 말씀을 실제로 듣고 있었는데, 상황폐하께서 발언하신 것에 대해서는 솔직히 놀랐던 기억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에서는 천황이 한국인의 후손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지만 어디까지나 그 대 1인후를 백제왕의 후손으로 맞아들였을 뿐, 원래 천황가는 남계 계승이기 때문에 어머니를 거슬러 계보를 따라가지는 않는다.게다가 백제는 한반도에서 멸망했기 때문에 그것을 일본이 보호한 입장이 된다.그리고 그들은 일본인과 동화되어 가는 길을 택했으니 한국인이 아니다.
일본은 바다를 다 아는 해양국가 - 특아에게서 배울 것이 아무것도 없다.
일본에서 초밥을 먹은 외국인들이 왜 일본 초밥을 별개라고 평가하는지는 초밥 장인의 솜씨나 생선의 신선함만이 아니다.일본 어업은 단순히 물고기를 잡는 것이 아니다.그 물고기의 특성에 맞추어 가장 기름진 계절이나 산란 전 영양이 풍부한 계절에 그 물고기를 포획한다.
일본에서 방어는 여러 곳에서 어획되는데, 도야마현의 히토미라는 지역에서 올라가는 방어는 일본에서 최고봉이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다테야마 연봉으로부터의 해빙수가 인간이 사는 지역을 거의 경유하지 않고 히미만에 흐르는 미네랄이 풍부한 바닷물로 자라기 때문에 다른 곳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맛있는 방어가 된다.일본의 어업은 그렇게 산에서 쏟아지는 강물조차도 계산된 어장이나 계절에 따른 해류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한온을 다 알고 이루어진 후 이루어졌다.
후쿠시마 처리수 건으로 중한의 반응을 보면 양국에 원자력발전소는 있지만 근본적인 부분부터 개발할 기술자는 없는 듯하다.아마도 해외에서 설비를 구입해 설치하고 운용 방법만 배워 발전을 하고 있다.자국 내에서 원전을 만든다고 해도 기본적인 부분이 아니라 차로 치면 부분변경 같은 것을 하고 있지만 실제로 방사성 물질이 어떤지, 냉각수에 무엇이 포함되어 있는지 등은 모르는 것 같다.
자국 어업이 괴멸적인 피해를 본다고 비명을 지르지만 일본은 선진국 중 유수의 환경보전 강국이고 물고기 생태와 해류, 계절에 따른 변화 등을 모두 알고 있기 때문에 중한으로부터 배울 것이 없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그리고 해양 방출을 국제기구와의 연계를 통해 시작했다.
앞으로 30년간 중한은 방사능 공포에 노출되는 삶을 살겠지만 일본이 감지할 문제는 아니다.일본은 적절하게 미증유의 원전사고를 극복하고 처리수를 물대포해 지금까지와 같이 맛있는 물고기를 포획하는 해양국가로서의 생활을 계속할 뿐이다.
음영 예찬, 일양 절충의 일본 대륙은 문자를 폐지하고 과거를 파괴했다 완전히 다른 역사에 대한 접근
일본문화와 음영예찬
어두껍고 아름다운 일본 칠기
일본인이 목표로 한 것은 양립과 조화
대륙에서 이루어진 것은 과거의 부정
한국에서는 한자를 폐지
간체자 도입으로 과거를 읽을 수 없는
과거 문서를 읽지 못하면 역사도 읽을 수 없다
고문,한문을 배우는 일본
과거를 소각하고 역사를 만드는 대륙
일본의 황족은 계속 존속하고 있다
일본 문화에 대해 생각할 때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음영 예찬이 떠오를 때가 있다.중학교 시절 국어 수업에 뭔가 어려운 문장이 등장해 이해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기억한다.그 문화가 생겨난 배경을 알아야 일본 문화의 우수성을 재발견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일본의 옻칠 기술에 대해 검은색을 기반으로 한 일본의 칠기는 전기가 없는 시대에 촛불 등 어두컴컴한 식탁에서 떠오르는 그릇이 아름답게 비치도록 추구한 것이 일본의 옻칠 기술이라는 것이 설명되어 있었다.
전구의 빛 속에서는 검은 그릇은 맞지 않는 것일까, 흰 접시나 유리컵이 귀하게 여겨지게 되었다.그러나 촛불의 어두컴컴한 어둠 속에서 일본 그릇으로 식사를 하면 아름답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단적으로 말하면 일본에서는 일양 절충이라는 말이 있다.메이지, 다이쇼 시대에 서양 문화가 대량으로 유입되지만, 일본인은 일본 전통 문화와의 양립과 조화를 이루었다.양립과 조화를 통한 계승이다.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裕吉)는 서양 문화는 유행병과 같다고 표현했다.거기에 저항해도 그 감염을 막을 수 없으니, 그것들을 받아들인 후의 사고방식이 필요하다고 설파했다.
일본이 양립과 조화를 요구한 것은 그릇이나 문화풍습뿐만 아니라 이를 전하는 문자나 문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한편 대륙에서 벌어진 일은 양상이 다른 것 같다.중국의 문화대혁명이란 무엇일까.사회주의, 공산주의를 도입하면서 자신이 자랑해온 역사적 중국문화를 파괴하는 운동이었고, 실제로 문화재를 파괴하고 지켜온 사람들을 참살했다.
한국에서는 어떨까.전후 독립국이 된 후 1948년 한글전용법에 의해 공문을 한글로 적는 것이 결정되었고, 1970년 한자 폐지 선언이 이루어지면서 교과서에서 차례차례 한자가 사라졌다.한글을 민족의 문자로 삼는 것은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한자를 폐지함으로써 과거 문서를 읽을 수 없게 된 것이다.문자를 폐지한다고 하는 대처는 일본인 입장에서 보면 이해할 수 없다.
중국 문화대혁명 때 도입된 간체자(간소화 기호화한 현재의 한자)에 대해서도 같은 의미가 있다.번체자(옛 한자)를 간체자로 대체함으로써 이후 학교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과거에 번체자로 쓰여진 문서를 읽을 수 없게 되었다.
현재 번체자를 사용하는 곳은 일본 대만 홍콩이다.문화대혁명의 영향을 받고 싶었던 것이 원인이다.
특히 한국에서 역사인식이 너무 자유자재로 변화하는 것은 과거 문서에 대한 접근이 부족한 것도 큰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는 물론 그 이전의 문서들은 한자로 쓰여져 있어 이들 일체를 현대 한국인들은 읽을 수 없다.아마 읽으려는 생각조차 없을 것이다.역사는 이미 문서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란 말인가.
이 얼마나 아시아인으로서 개탄스럽고 한심한 일인가.국민의식이나 문화란 그런 방식으로 조성되는 것일까.어느 것도 일본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일본은 과거 문자를 계속 활용해 만바가나로 불린 히라가나로 소리를 보강해 일본어 기술을 발명했다.
과거의 문장도 표현이나 형용사가 다르기도 하니 일본의 교육에서는 고문이나 한문을 배워 과거의 문서를 읽으려고 한다.과거에 살았던 일본인들의 사고방식과 문화풍습을 접하기 위해서다.
원래 대륙의 역사란 전쟁에 의해 왕이 왕을 살해하고 왕조 교체가 이루어진다.이때에는 과거 왕조가 쌓은 많은 것들이 파괴되고 나쁜 왕을 쓰러뜨리고 좋은 왕이 군림했다는 구도를 만들어낸다.이때 '분서'라는 것이 행해진다.전 왕조 때의 문서를 불태워 파기해 버리는 것이다.역사의 파괴와 조작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일본 왕조는 바로 천황가 이외에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어느 시대에도 일본 왕족들은 지켜지고 유지되어 왔다.일본인들은 어떤 사회 변화에서도 천황가를 폐지하자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그래서 연간 천황폐하를 거느린 일본이 존재해 왔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즉 대륙에 있어서의 과거에의 어프로치와, 일본의 과거에의 어프로치는 근저의 부분부터 전혀 다르다.
일본의 문화재 등록을 매번 방해하는 한국 - 우리나라 기원설은 문화의 의미를 모르는 문화사막이 원인
일본의 문화재 등록을 매번 방해하는 한국
가라테는 중국에서 전래된 가라테가 기원
캘리포니아롤은 미국의 초밥
최강 주짓수 일가의 그레이시 일족
태국인을 격분시키는 한국
문화의 의미를 모르는 한국
일본의 일본 신문은 2014년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이때 문제가 생겼다.종이 제조법은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전해졌으니 한국 것이라고 주장하며 일본을 도둑국가라고 떠들며 문화등록 방해활동을 벌인 것이다 .
일본 종이의 기원은 중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일본 종이의 제조법과 품질에 대해 일본에서 독자적으로 진화한 것이다.당연한 얘기지만 유네스코는 국제 상식에 따라 일본의 화지를 등록했다.
가라테는 일본의 무술이다.중국에서 오키나와로, 가라테로서 중국 무술이 전달되어 일본에서 독자적인 진화를 하여 가라테의 형태가 되었다.많은 일본인들이 알고 있는 이야기다.반대로 가라테는 중국에는 존재하지 않는다.중국은 중국 무술의 발전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초밥 중에 캘리포니아 롤이라는 게 있어.아보카도와 마요네즈 등을 사용한 마키초밥이다.저것을 초밥이라고 생각하는 일본인은 적을 것이다 .설령 캘리포니아롤이 무형문화유산 등재를 한다고 해도 불평하는 일본인은 없을 것이다.오히려 응원하겠지.
한국은 일본문화가 한국발래라고 호소합니다.이 밖에도 사무라이, 게이샤, 다도, 유도 등도 한국이 발상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브라질 유술은 그레이시 가문이 내세우는 주짓수로 일본의 주짓수를 배워 발전시켰다.그러나 브라질 유술을 일본 것이라고 주장하는 일본인을 본 적이 없다.저것은 그레이시 가문의 것이다.
한국은 태국의 무에타이도 한국 기원이라고 주장해 태국인들을 격분시켰다.태국인은 역사상 중국 남부에 살았던 민족으로 중국 무술, 인도 무술의 원류를 상상한다(구체적인 기록은 없다).그러나 무에타이는 중국 무술도 인도 무술도 아니다.무에타이는 태국의 격투기이자 태국의 국기이다.
문화가 발전함에 있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여 노력을 하고, 발전시켜 그 나라의 문화로 정착시켰는지에 대한 상상력이 최소한 필요하다.
이것은 문화와 전통에 대한 이해와 경의의 문제이다.오히려 이러한 노력이나 경험이 없는 때문에 한국은 쉽게 다른 나라의 문화를 자국 기원이라고 말하기 시작하는 것처럼 보인다.
김치의 기원이 중국의 아와채라는 중국의 주장에 대해 한국인들이 격분하여 논쟁이 벌어졌을 때 문화적 콤플렉스의 표현이라고 중국으로부터 조롱을 받았습니다.
베르사유 장미는 서구에서 대히트를 친 일본 작품 - 프랑스에서는 Lady Oscar.
남장의 여인 오스칼
실제하지 않는 가공의 이야기
유럽에서 큰 인기를 끈 베르사유 장미
민주주의의 대항축으로 자리잡은 왕실
적에 초점을 맞추는 일본 문화
한국은 프랑스 혁명을 일으켰다고 한 문재인 전 대통령
베르사유 장미는 1972년부터 1973년까지 연재된 만화이다.다카라즈카 가극단이 무대화해 대히트를 치면서 주목받아 애니메이션화됐다.무대는 프랑스 혁명 전야의 이야기이다.주인공인 오스카르는 여성이자 남장의 여인으로서 아름답고 강해 남성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나중에 처형되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근위연대장으로서 경호를 맡는다.
오스카르에게 마음을 쏟는 남성 앙드레와의 관계나 오스카르의 경호를 받는 마리 앙투아네트와의 인간관계나 연애관계 등 적나라하게 그려진 작품이다.그리고 놀라운 것은 웅장한 작품 세계관 속 주인공 오스칼이나 앙드레는 실재하지 않는 인물이다.
아시다시피 루이 16세나 마리 앙투아네트는 프랑스 혁명에 의해 길로틴에 의한 공개 처형을 당한다.즉 이 작품이 그린 것은 당시 민중의 적이었던 프랑스 왕실을 그린 작품이다.애니메이션화된 작품은 유럽에서도 방영되어 절대적인 인기를 자랑한다.물론 프랑스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
서양과는 전혀 문화도 역사적 접점도 적은 동양의 섬나라 일본이 만든 작품이다.반대로 서양인이 에도시대를 그린 작품을 만든다고 해서 그것이 일본인의 눈에 맞을까.
프랑스 혁명은 프랑스 민주주의 전환의 일대 사건이었고 세계 역사도 바꿔나갈 에너지를 갖고 있었다.그런 의미에서 당시 프랑스 왕실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치면 전범이고 독일이라면 히틀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쉰들러 리스트는 히틀러나 나치 측에서 그 인간상을 그린 작품이다.베르사유의 장미는 역사상 악으로 여겨지는 쪽에 각광을 받아 웅장한 작품으로 만들어 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인권의식이 높은 우리 국민은 왜 쉰들러 리스트나 베르사유 장미 등의 작품을 규탄하지 않는 것일까.나치나 유대인을 잘 아는 한국 국민은 세계인을 교육시켜야 할 텐데.문재인전 대통령은 마크롱 전 대통령을 상대로 박근혜탄핵 건에 대해 한국은 프랑스 혁명을 일으켰다고 밝힌 바 있다.